티스토리 뷰
목차

집중을 못 하는 게 의지 문제라고 믿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산만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고, 그때마다 '더 노력하면 고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설명을 접하고 나서야, 제가 그동안 바위를 맨손으로 밀어 올리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지냐, 뇌 생리학의 문제냐. 이 글은 그 경계에서 제가 직접 부딪혀온 이야기입니다.
ADHD 유형, 조용한 사람도 해당될 수 있습니다
ADHD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교실에서 책상 위에 올라가거나 쉴 새 없이 떠드는 아이를 먼저 떠올립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유형이 존재합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부주의형(AD형), 과잉행동·충동형(H형), 그리고 두 가지가 모두 나타나는 혼합형입니다. 여기서 부주의형이란 겉으로 산만해 보이지 않지만 속으로는 집중이 툭툭 끊기는 '조용한 ADHD'를 의미합니다. 점잖고 의젓해 보이기 때문에 주변에서도, 본인조차도 뒤늦게 알아채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과잉행동·충동형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다리를 떨거나 손을 꼼지락거리는 행동, 상대방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끊고 들어가는 충동성이 두드러집니다. 이 두 유형을 가르는 핵심은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느냐가 아니라 뇌의 특정 영역에서 도파민이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부족하게 작동하느냐입니다.
제가 직접 대조해봤는데, 저는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 어머니가 불려 오실 정도로 '쓸데없는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았습니다. 수학 시간에 갑자기 과학이나 국어 질문을 던졌던 것인데, 당시에는 그게 수업을 방해한다는 인식조차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전형적인 혼합형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 부주의형(AD형): 조용하고 의젓하나 집중이 잦게 끊기고, 세부 사항을 자주 놓침
- 과잉행동·충동형(H형): 몸을 가만두지 못하거나 말이 많고, 차례를 기다리기 어려움
- 혼합형: 위 두 유형이 동시에 나타나며, 임상에서 가장 흔하게 진단됨
제 일상 패턴이 증상 목록과 너무 정확히 겹쳤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상에서 나열한 증상 목록을 보면서 '어, 이거 나잖아'라는 생각이 연달아 든 건 처음이었습니다.
집안일을 할 때 미리 순서를 정해두지 않으면 빨래를 개다가 갑자기 장난감을 정리하고, 어느새 청소기를 돌리고 있습니다. 각각의 일은 시작하는데, 끝까지 마무리된 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매장 운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마트스토어에 올릴 상품 사진을 찍다가 갑자기 행거 디스플레이를 정리하고, 그러다 창고 정리로 넘어가 버리는 식입니다.
이런 행동 패턴은 작업기억(Working Memory) 기능의 불안정성과 관련이 깊습니다. 작업기억이란 지금 하고 있는 과제를 머릿속에 붙잡아두면서 순서대로 수행하는 뇌의 단기 처리 능력을 말합니다. 이 기능이 취약하면 원래 하려던 일을 중간에 놓치고 새로운 자극으로 관심이 이동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숫자를 읽을 때 75652를 76525처럼 뒤섞어 읽거나, 책을 읽다가 딴생각이 들어 같은 줄을 서너 번 다시 읽는 경험도 제게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대화 중 상대방 말을 듣다가 완전히 다른 생각이 떠올라 "방금 뭐라고 하셨죠?" 하고 되묻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만큼은 의지로 어느 정도 보완이 되긴 했지만, 방심하면 어김없이 다시 튀어나옵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 따르면 성인 ADHD는 전 세계 성인의 약 2.5~4.4%에서 진단되며, 아동기보다 성인기에 발견되는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입니다(출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 이는 스마트폰과 짧은 영상 콘텐츠의 보급으로 인한 팝콘 브레인 현상, 즉 빠른 자극에만 반응하도록 길들여진 뇌 패턴이 증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현대적 요인과도 연결됩니다. 팝콘 브레인이란 짧고 자극적인 정보에만 반응하도록 뇌가 적응되어 느리고 지속적인 집중을 요하는 작업에서 더 큰 어려움을 보이는 상태를 뜻합니다.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할까, 의지로 충분할까
이 부분에서 저는 아직도 완전히 한쪽 편을 들지 못합니다. 의지로 충분히 고칠 수 있다고 믿는 분들도 분명 계시고, 저 역시 그렇게 믿으며 꽤 오랫동안 스스로를 훈련해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상당 부분은 개선되었습니다. 집안일을 할 때 미리 순서를 메모해두는 습관, 매장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할 일 목록을 정해놓는 방식이 꽤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런 외부 구조화 전략이 인지행동치료(CBT)에서 활용하는 핵심 기법과 실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인지행동치료(CBT)란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비효율적인 사고 패턴을 인식하고 수정하는 심리 치료 방법입니다.
다만 숫자를 잘못 읽는 것, 대화 도중 맥락을 잃는 것, 방금 하려던 일을 까먹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제 경험상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전문의들은 이를 '안경' 비유로 설명합니다. 근시인 사람이 의지로 눈을 좋게 만들 수 없듯, ADHD의 도파민 부족 문제도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도파민 부족이란 뇌의 전전두엽을 중심으로 한 보상 및 집중 회로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분비와 재흡수가 불균형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국내 정신건강의학 분야 전문 학술 정보를 제공하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ADHD 약물 치료가 수십 년간 축적된 임상 연구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어 있음을 공식적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물론 약물 치료가 모든 분께 정답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스스로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 비약물적 방식으로 충분히 기능을 유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만 제가 느낀 건, 지금까지 의지 하나로 버텨온 노력이 어쩌면 비효율적인 방향이었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한 번쯤 전문의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내가 원래 가진 역량을 100% 발휘하는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성인 ADHD는 어릴 때 못 잡으면 그냥 사는 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진단과 치료를 시작할 수 있고, 실제로 성인기에 처음 발견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부주의형은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아 늦게 발견되는 경향이 있을 뿐, 치료 시작 시점이 늦었다고 해서 효과가 없는 건 아닙니다.
Q. 집중을 오래 잘하는 편인데도 ADHD일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수 시간 과몰입하는 것도 ADHD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를 과집중(Hyperfocus)이라 부르는데, 선택적으로만 집중력이 폭발적으로 발휘되고 일반적인 과제에서는 집중이 유지되지 않는 불균형한 패턴이 특징입니다. 집중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ADHD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Q. ADHD 약물을 오래 먹으면 뇌에 해롭지 않나요?
A. 이 부분은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만 수십 년간의 임상 연구에 따르면 ADHD 치료제는 오히려 뇌의 안정적 성숙을 돕는다는 방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복용 여부와 용량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야 하며, 자가 판단으로 조절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Q. 병원에서 ADHD 진단은 어떻게 받나요?
A.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문진이 기본이고, 필요에 따라 전산화 주의력 검사(CPT) 같은 객관적 도구 검사를 병행합니다. 과거 학창 시절 모습이나 가족의 증언도 진단에 참고됩니다. 자가 진단으로 의심이 되더라도 실제 진단 결과는 다를 수 있으므로 전문의 진료를 받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약 없이 인지행동치료(CBT)만으로도 효과가 있나요?
A.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증상이 비교적 가벼운 분들은 CBT와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 충분히 기능을 유지하기도 합니다. 저도 일정 부분은 구조화 전략으로 개선 효과를 봤습니다. 다만 뇌의 도파민 불균형이 뚜렷한 경우에는 약물 치료와 병행할 때 훨씬 빠르고 안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결론
저는 오랫동안 이 모든 게 의지 부족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더 열심히 하면 고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해왔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노력으로 개선되는 영역이 있는 반면, 아무리 신경 써도 반복되는 패턴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제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의지와 전문 도움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구조화 전략을 만들어가면서 동시에 전문의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어느 한쪽만 고집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그런 것 같은데' 싶으신 부분이 있다면, 혼자 결론 내리기보다 한 번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문을 두드려보시길 권합니다.